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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8-13 16:50
예수님의 선교원리: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를 찾아서
 글쓴이 : 예수말씀
조회 : 3,136  
예능교회 수요성령축제
2004년 5월 19일
오후 7:30

예수님의 선교원리: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를 찾아서

소기천 목사(장로회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엡 3:18-19)야 한다. 바다가 넓지만 하늘은 더 넓다. 하나님은 그 하늘마저도 품으신다. 에베레스트산이 높지만, 사실 높은 산은 태평양 바다 깊은 곳에 숨어있다. 기준을 어디에다 두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하나님의 사랑의 기준을 율법(律法)에 둘 것인가? 아니면 생명의 고귀함에 둘 것인가? 율법의 형식인가? 아니면 그 내용인가? 율법의 본 뜻은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들이 바로 예수가 깊이 있게 다룬 핵심적인 질문들이었다. 안식일 법이 문제가 아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안식일을 주셨는가? 예수의 말씀을 직접 들어보자.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막 2:27). 요즈음에 젊은이들이 흔하게 쓰는 말로 조심스럽게 말한다면, ‘일요일은 즐거워라. 나를 위한 날이구나’이다. 믿는 사람들이라면, ‘주일은 바로 주님께서 저희들을 위해 주신 것이군요!’라고 말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에 입각하여 율법 가운데 진수라고 말할 수 있는 안식일 법을 재점검해 보아야 한다. 누가복음 14장 1-6절을 보면, 안식일에 고창병 환자가 등장한다. 거룩한 것과 거룩하지 않은 것이 동시에 다루어지고 있다. ‘고창병’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단어는 ‘휘드로피코스’인데, 어근에 ‘휘디아’(물병 혹은 물주머니)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고창병이란 피부에 물주머니 같은 것을 달고 있는 병이다. 그래서 ‘수종증’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병의 심각성이다. 아이들이 수두를 앓게 될 때, 제일 걱정되는 것이 고열에 시달리는 것이다. 혹시 정신이라도 잃어버리면 어떻게 될까 봐서, 부모들이 아이들 옆에서 꼬박 밤잠을 설치면서 지켜보는 것이 아닌가! 고창병 환자는 이보다 더 심각하다. 열이 펄펄 끌어서 더 이상 아무 손도 쓸 수 없을 정도의 위급한 상태가 초래된 것이다. 바로 그 순간에 예수는 ‘떡을 잡수시러 바리새인의 두령의 집’(눅 14:1)에 들어갔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주일 예배를 마치고 성도들과 함께 근사한 회식 기회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이미 거기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다 알고서 ‘엿보고’ 있었다.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이 ‘합당한가?’ 예수는 사태를 관망하고 있는, 아니 사랑에 무관심하고 도리어 예수를 책잡으려고 벼르고 있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서 고창병자를 고치는 사랑의 행동을 하는 것이 적법(適法)한지? 아니면 불법(不法)인지? 묻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잠잠하고’(눅 14:4)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눅 14:6). 그 다음에 예수가 선언하고 있는 말씀이 무엇인가? “너희 중에 누가 소 한 마리를 가지고 있는데,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다면 건져내지 않겠느냐?”(눅 14:5). 율법의 본질은 사랑이다. 율법은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율법의 노예가 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을 지켜 주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의 원리가 안식일 법에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하게 될 때, 율법을 넘어 설 수 있다.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면, 이해하지 못할 사람이 없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사랑의 원리를 올바르게 실천하고자 몸부림을 친 사람이다. “피차 사랑의 빚 이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 하나님의 사랑은 율법에 얽매여서 살아가는 인생을 풀어 준다. 무엇인가에 붙잡혀서 살아가는 인생! 세상살이에 허덕이고 있는 인생을 풀어내서 자유와 해방을 주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다. 예수는 자유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유의 대헌장이다.
우리 인간은 잘 모르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저 자기가 확신하고 있는 율법과 사상과 이념과 제도와 형식만을 고집할 때가 많다. 그러나 율법은 사람을 정죄(定罪)할 뿐이다. 율법으로 말하자면,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롬 3:19-20).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모든 사람은 자유인이 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의 형벌과 그 대가를 지불하였기 때문이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내 죄를 대신하여 달려 죽으심으로써 나의 모든 죄악을 구속하여 주셨다. 이렇게 큰사랑을 누가 모른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주여, 이 몸을 주를 위해 바칩니다! 값없이 주신 은혜 속에 숨겨진 사랑의 의미를 알고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값없이 주신 은혜이지만 결코 값싸게 여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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