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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8-13 17:06
첫 사랑의 회복
 글쓴이 : 예수말씀
조회 : 4,989  
첫 사랑의 회복
요한 계시록 2장 1-7절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에 대한 첫 사랑이 식은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심각성이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한 채 말입니다. 그리스도와의 첫 사랑은 완전히 잊어버렸을 뿐 아니라 아예 그 사랑을 몰랐던 사람처럼 살아갑니다. 첫 사랑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다른 일만 바쁘게 처리하다가 어느 날 공허한 영혼을 발견하며 절망하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먼저 우리가 첫 사랑을 버렸던 그 자리를 기억하기를 원하십니다. 또 전심으로 깊이 회개하기 원하시며, 첫 사랑을 회복할 것을 간절한 마음으로 바라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첫 사랑을 회복한 이에게는 놀라운 하늘의 상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이를 위해서 자기 자신의 첫 사랑을 잃어버린 모습을 직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을 진정으로 드러냈을 때가 비로소 회복이 시작되는 첫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에선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를 ‘결혼’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과 결혼한 사이입니다. 여러분의 주님과의 결혼생활은 어떻습니까? 신학교에 들어온 후 하나님과의 관계가 과거보다 더 멀어지진 않았습니까? 어느 새 나의 영혼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보다 나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와 더 큰 교회를 찾기 위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진 않습니까? 
오늘 하나님께서 본문을 통해 들려주신 말씀은 우리와 주님과의 결혼생활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말씀으로, 요한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의 일부입니다. 에베소는 아시아 지방의 최대 도시였고, 가장 큰 항구였습니다. 그래서 “아시아의 관문”으로 불리기도 한 에베소는 가장 부유한 대도시였습니다. 사람과 상품이 끊임없이 에베소를 통해 흘러 들어오고 흘러 나갔습니다. 또한 이곳은 풍요를 상징하는 아데미 신과 권력을 상징하는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중심지였습니다. 니골라당으로 대표되는 이단이 판을 치고, 그 부도덕함 때문에 에베소는 악의 도시로서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타락함 가운데서 에베소 교회는 신앙을 지키기에 힘썼습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교리적 순수함을 지켜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부지런했고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핍박과 고통을 견디기 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에베소 교인들이 놓친 것이 딱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에 대한 사랑대신 의무감이 그 자리를 차지한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께 대한 첫 사랑을 잊어버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겉으로 보이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엔 익숙했지만 속으로는 주님에 대한 사랑은 어느새 냉담하게 식어버렸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온기가 차갑게 변하고 생명력을 잃었습니다. 그들은 껍데기 그리스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우리의 사랑이 의무로, 겉만 번지르르한 껍데기로 변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오늘의 본문은 바로 첫 사랑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말씀입니다. 이제 오늘의 본문을 경청하십시다.
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향한 처음 사랑의 회복이 매우 근본적인 문제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을 향한 첫 사랑을 회복시켜 놓지 않으면 주님을 위해서 어떤 훌륭한 일을 한다 해도 무가치하다고 말씀합니다. 남 보기엔 완벽히 모범적으로 보여도 그 영혼 속에 주님을 향한 첫 사랑이 회복되어 있지 않다면 그는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없는 먼 사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관계는 전혀 사랑이 없으나 겨우 결혼생활 만을 유지하는 부부의 관계, 이혼까지 생각할 정도로 그 첫 사랑이 싸늘하게 식어버려 회복되지 않은 부부의 관계와도 같습니다. 그렇다면 나와 주님의 관계는 어떠합니까? 친밀한 첫 사랑이 회복되어 있습니까? 아니면 에베소 교회처럼 겉모양만 있고, 속은 비어있는 공허한 관계입니까?
주님께 대한 처음 사랑의 회복보다 더 우선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 첫 사랑의 회복은 열심 있는 봉사와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주님에 대한 첫 사랑을 회복한다는 것은 모범적 행위로 자신의 영혼을 포장한 채로 주님과 세상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는 것도 아닙니다.
국어사전은 첫 사랑에 대해 “처음으로 느끼거나 맺은 사랑”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처음 사랑”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아가페 프로토스”라고 말하며, 이 “처음”이라는 단어는 시간적 개념이 아니라 본질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주님과의 첫 사랑의 회복이란 주님과 처음 맺은 열정적인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신혼부부의 사랑처럼 서로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서로를 바라보는 눈에 빛이 나는 것 같은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신랑 되신 주님과의 친밀한 첫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첫 사랑을 잃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조차 잊는 영적 기억상실증에 걸립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에 너무 오래 있어서 자신들이 다시 태어난 것도 잊어버립니다. 첫 사랑을 버리고 돌아오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이 찬양 사역자의 예처럼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그 결과가 참담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주님과의 뜨거운 첫 사랑을 회복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영적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주님과의 신혼 생활로 돌아갈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깊고도 친밀한 첫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 길을 오늘의 본문을 통하여 너무나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첫 사랑을 잃었던 바로 그 현장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네가 어디서 떨어졌는지 그 장소를 기억하라!(5절 상반절)”
여기서 “떨어졌는지”로 번역되는 ‘펩토카스’는 주로 신앙의 타락을 나타내는 데 사용됩니다. 이는 본래 가지고 있었던 처음 사랑을 버린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기억하라”로 번역되는 ‘므네모뉴에’는 현재 명령형입니다. 여기서 계속과 반복을 나타내는 현재형이 쓰인 것은 일시적으로 기억함이 아니라 계속해서 기억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에서 멀어져 있는 자신의 현재 모습을 발견하고 인정하는 것을 뜻합니다. 또 자신이 어떻게 처음 사랑을 버렸는지에 대해 기억을 더듬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첫 사랑을 잃어버린 그 현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대인의 삶은 참 복잡합니다. 그들은 동시에 많은 일을 한꺼번에 이루어 내야하는 촉박함 속에 살아갑니다. 직장, 각종 시험, 인간관계, 결혼 생활 등 당장 눈앞에 보이는 긴급한 일만을 쫓아가다 보면 정작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신학생들은 어떻습니까? 신학교에 들어온 후 얼마간은 입학했다는 감격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숙제와 사역 등으로 시간에 쫓겨 바쁘게 살다 보니 주님과의 첫 사랑은 어느 새 우리의 기억 저 편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에선 점점 멀어지고 영적 기억상실증과 영적 둔감증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첫 사랑의 감격을 잃어버린 바로 그 현장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자기 자신과 대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을 직시하는 과정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자신을 똑바로 보려면 첫 사랑을 잃어버렸던 그 길을 되돌아가야 합니다. 아프고 괴롭지만 그 현장으로 돌아가서 기억해야 합니다. 나를 진정으로 드러냈을 때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헨리 나우웬은 비록 아프다 해도 자신의 과거를 잊어버리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말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첫 사랑을 잃었던 잘못된 방향에서 속히 돌이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회개하고 처음 행위를 행하라.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너의 촛대를 없애버리리라(5절 하반절).”
회개라는 말은 ‘리턴(return)’을 의미합니다. ‘원점으로 다시 돌아가라, 왔던 길로 다시 돌아서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회개하라’라는 뜻을 지닌 ‘메타노에오’로서 단순한 뉘우침이나 후회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총체적이며 즉각적 회개를 의미합니다. 완전한 방향 전환을 말합니다. 한 교의학자는 회개를 가리켜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심으로써 일어나는 마음과 생각과 삶의 강력한 변화”라고 설명했습니다.
회개는 자신을 똑바로 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 자신을 깊이 바라볼 수 있을 때 진정한 회개가 일어납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장로, 권사, 목사, 전도사 등의 이름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살아갑니다. 순수했던 첫 사랑을 까맣게 잊어버린 채로 말입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정작 자신은 주님과의 첫 사랑을 까마득히 잊어버린 채 성도들에게 사랑에 대한 설교를 합니다. 겉으로는 훌륭한 목회자인 척, 훌륭한 목자인 척 자신을 포장하지만 사실 자신의 영혼은 영적 죽음의 상태에 이릅니다.
하나님께선 이런 우리에게 영적 가면을 벗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통회하며 자복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릇된 방향에서 즉각적으로 방향을 돌이키라고 말씀합니다. 요나가 니느웨성의 백성들에게 선포했을 때 그들이 금식하며 굵은 베 옷을 입고 회개했던 것처럼 마음을 찢고 회개하라고 말씀합니다.
D. L. 무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중심으로 통회하는 자의 참된 회개를 볼 때마다 그 분은 그 영혼을 바로 회개의 자리에서 만나 주실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은 잘못된 방향에서 돌이킨 우리에게 첫 사랑의 회복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처음 행위를 행하라.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너의 촛대를 없애버리리라(5절 하반절).” 
여기서 ‘처음’이란 단어 속에는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가졌던 열정을 내포 있습니다. 즉 ‘처음 사랑’이란 처음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가졌던 하나님과 사람들에 대한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의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는 에베소 교인들이 잘못된 방향에서 돌이켜 첫 사랑으로의 새로운 삶을 향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할 경우엔 그 촛대를 없애버리겠다고 말씀합니다.
회개의 적극적인 측면은 새로운 방향을 향해 걸어가는 것입니다. 즉 단순히 첫 사랑을 잃어버린 것을 회개하는 것 뿐 아니라 첫 사랑의 회복을 향해 나아가는 적극적인 추진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회개는 하면서도 현실에 안주하려고 합니다. 떠나기를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려면 뼈를 깎는 고통과 노력이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온전한 회개는 죄에서 떠나 하나님과의 첫 사랑으로 향하는 고통스런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그런 힘든 과정을 겪을 때 그냥 내버려 두시지만은 않습니다. 하나님은 온전한 첫 사랑으로의 회복을 위해 힘겹게 걸음을 내딛는 우리를 끊임없이 격려하시며 힘을 북돋아 주십니다. 우리의 바로 옆에서 “화이팅!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힘을 내!”라고 외치고 계십니다.
또 하나님은 우리가 첫 사랑을 회복할 날을 꿈꾸며 생명나무의 실과와 같은 영원한 축복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서 회개하고 돌아와 그 축복을 누리길 간절히 원하십니다. 탕자가 돌아오길 하염없이 기다렸던 아버지처럼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도 우리가 아버지와의 첫 사랑 속으로 돌아오길 애타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늘의 성대한 잔치를 준비하시고 이제나 저제나 우리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가 돌아오길 기다리고 계십니다.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의 열정을 회복하기 원하십니다. 그 친밀함을 회복하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사랑 고백을 다시 한 번 듣고 싶어 하십니다. 그리곤 하늘의 풍성한 축복을 예비해 놓으시고 우리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여기 안이숙 여사의 시의 일부를 인용합니다.

나는 노래하리라 그 분을!

나는 그 분을 알아요. 정말 알아요.
나는 그 분이 그렇게 좋아요.
정말로 정말로요.
나는 그 분이 그렇게 좋기 때문에
사는 거예요.
나는 그 분 때문에 기쁘고
또 기쁘고 정말 기뻐요.

나는 노래하리라.
천국어로 그에게 내 사랑을 고백하며
나는 그의 사랑을 노래하리로다
그 분을 영원히 영원히
천국어로, 천국 곡조로
환희에 넘치는 만족한 천국말로 노래하리로다.
그 분을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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