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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9-16 15:17
성령학교의 비전과 성령의 역할
 글쓴이 : 예수말씀
조회 : 3,055  
   성령학교의 비전과 성령의 역할.hwp (50.5K) [11] DATE : 2010-09-16 20:21:26
 

성령학교의 비전과 성령의 역할


지혜로우시며 인자와 긍휼이 한이 없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혜를 주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어리석어서 하나님의 온전하시고 깊으신 뜻을 헤아릴 능력이 없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하나님의 지혜를 우리에게 주시옵소서,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깨달아 알고 순종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듯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하옵니다. 세상의 어리석음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세상에 이루어지게 하시는데 부족한 저희를 사용하여 주옵소서.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영을 부어 주시사 낮은데 처하여 이웃과 세상을 섬기게 하옵소서. 주 예수의 이름만 우리 안에서 세상에서 높임을 받으소서.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리오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성령을 내러티브로 이해해야 하는 이유

        한국 사람들은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드라마공화국’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드라마가 발전되었고 연예계의 많은 이야기로 구성된 한류가 아시아의 열풍이 되었다. 이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야기를 좋아하는 특성이 있음을 증명해준다. 예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은 “옛~날 옛~적 한~ 옛날에~~ 글쎄~~ 호랭이가 담배 먹던 시절이 있었시유~~!”로 시작하는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고 열광한다. 이와 같이 말씀을 읽을 때나 설교를 들을 때에도 이야기 읽기 방식을 모두가 선호하지만 교회에서는 보편적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이야기 방식은 새로 등장하였는데 성경을 이야기식으로 전달하기 쉽지 않아 목회자들이 잘 사용하는 방식은 아니다. 비록 목회자들이 어려워하고 잘 몰라도, 이야기를 배워서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성경은 하나님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이다. 초월적인 하나님께서 제한적인 인간을 찾아오셔서 “관계”와 “회복”이라는 구원의 길을 나누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내러티브로 이해해야 우리는 신구약을 넘나들면서 하나님을 알 수 있다. 나아가 오늘 현재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이해할 수 있다.


내러티브 성경공부 1(구약의 성령)


그 이름의 능력


시편 54 편


1) 자세히 읽고 이해하기

2절에 ‘내 입의 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일차적으로는 기도를 뜻한다.

그런데 ‘내 입의 말’은 단지 시편의 반복어법에 근거하여 단순히 ‘기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입술의 말은 통성기도나 방언기도를 의미할 수도 있다.

“내가 이성으로도 기도하고, 영으로도 기도하리라”(고전 14:15)

방언은 억지로 연습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방언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이다. 출애굽기 4장에서 모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하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니이다.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출 4:10)라고 고백하였다. 이 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냐 누가 말 못 하는 자나 못 듣는 자나 눈 밝은 자나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출 4:11)고 반문하시면서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출 4:12)고 말씀하셨다. 이런 대화는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서 압제당하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보여주는 동시에 인간의 언어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임하는 방언의 세계도 보여주는 것이다. 방언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입과 입술을 주장하실 때, 일어나는 신비로운 은혜의 역사이다.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방언을 말하게 하신다.

방언을 하기 위해서는 몸이 방언기도를 위해 준비되어야 한다. 손을 모아서 꽉 쥐면 간절한 기도를 드릴 준비 자세는 될지 모르지만, 방언을 위한 기도자세는 되지 못한다. 더구나 입을 꽉 다물고 기도하면서 어떻게 방언기도를 할 수 있겠는가. 손을 들고 위로부터 오시는 성령의 임재를 기다리고, 입술까지도 하나님께 맡겨서 내 입술을 성령께서 주장하시도록 움직이라. 몸과 마음과 입술을 하나님께 맡기고 열과 성을 다하여 통성으로 기도할 때 성령이 임재하여 방언을 하게 된다.


2) 본문의 표현 중에서 성령에 연결될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① 1절의 ‘주의 힘’은 성령의 능력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스가랴 4장 6절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성령을 인간의 힘과 능력에 비교했다.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성령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힘과 능력을 나타내시는 분이다.

                ② 4절의 ‘나를 돕는 이’는 보혜사 성령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구약의 성령은 감동 감화하는 영이 그 특징이라면, 신약의 성령은 보혜사가 그 특징이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자신이 함께 할 수 없지만 성령님께서 함께하러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4:16-17). 성령은 마땅히 빌 바를 알지도 못하는 우둔한 우리를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분이다(롬8: 26). 보혜사 성령은 우리를 돕는 분이다. 그런데 4절은 이러한 신약의 보혜사 성령의 특징이 구약에도 나타나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3) 본문과 관련된 다른 성경구절과의 관계 고찰하기

        7절에서 ‘내 눈이 똑똑히 보게 하셨나이다.’는 표현을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에서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행 2:3)한 말씀과 연결하여 생각해봅시다.

사도행전의 성령강림의 역사 중 특별히 2장 3절의 사건은 영의 세계가 일시적으로 보이는 사건이었다. 때로는 하나님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영의 세계를 인간에게 보여 주실 때가 있다. 다윗이 이런 영의 세계를 보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시편을 통해 알 수 있다.

        본문을 요엘서 2: 28-32절과 비교하여 새롭게 깨닫는 것이 무엇인지 나눕시다.

세상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면 대적자들은 심판을 받게 된다. 반면 끝까지 기도하며 인내한 자는 구원을 받게 된다. 요엘이 보여준 것은 성령의 다양한 은사를 언급한 내용이다. 마지막 때에 우리에게 필요한 성령의 은사에 눈을 떠야 한다.


4) 본문으로 세상읽기

6절의 ‘낙헌제’를 통해서 즉각적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인의 마음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무엇입니까?

낙헌제란, 감사제 및 서원제와 더불어 화목제에 포함되는 제사 가운데 하나로서 하나님을 사랑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제사이다.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나타낸다.


내러티브 성경공부 2(신약의 성령)


피차 복종함으로 섬김


에베소서 5:15-21


1) 15절의 ‘자세히 주의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요?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일이 진정한 섬김이 아닐까요?

‘자세히 주의한다’는 말은 ‘자세히 주목’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자세히 주목’한다는 것은 성령께 민감한 사람이 되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 또한 ‘자세히 주목’하라는 말이 내가 도우려는 대상에게 신중한 배려심과 지혜로운 분별력을 가진 태도로 대하는 것을 말한다. 출애굽기 3장에서 모세는 떨기나무 가운데로부터 나오는 불꽃을 보기 위하여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고 말하면서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출 3:3)라고 놀라워하였다. 이에 여호와께서 모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출 3:4)는 말씀이 나온다. 떨기나무 사건은 모세의 신중한 태도와 분별력이 하나님의 시선에 드는 영적인 사건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아주 놀라운 뜻을 우리에게 제공해 준다.

성령께 주목하면 사람의 진정한 필요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다는 사실을 체험하게 된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답답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올랐을 때(출 3:1-2), 하나님께서는 그를 만나 주셨고 그의 필요를 채워주셨다. 섬김이란 무엇인가?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다. 성령을 자세히 주목하면, 성령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성령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체험할 수 있는지 나눕시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가시면서 보내 주신 보혜사이다. 사람이 주 예수의 이름을 통하지 않고 구원을 받을 수 없으며 성령을 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 이름을 경외할 때 성령을 체험할 수 있다.


2) 본문과 관련된 다른 성경구절과의 관계 고찰하기

        이사야 55:8-9에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는 가르침이 본문을 이해하는데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인간의 이성으로 볼 때 어리석은 모습일 찌라도 하나님의 뜻은 진실로 선하고 위대하다. 인간의 지식, 문화, 습관들의 틀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간에게 넣어 주셔야 한다. 그것이 바로 지혜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지혜를 성령 충만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다.


3) 본문으로 세상읽기

        ① 15절의 ‘어떻게 행할지’와 21절의 ‘피차 복종하라’는 구절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요? 성령께서 나의 삶에 던지시는 도전은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나 자신의 주장만을 고집하지 않고, 나를 드러내고 인정받으려 노력하지 않겠다. 나를 비워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겠다. 이웃을 내 몸같이 사랑하는 마음으로 대하며 돌보겠다. 성령의 뜻을 쫒으며 서로의 의견을 존중하겠다.


        ② 20절과 관련하여, 왜 성령 충만한 사람이 ‘범사에’ 그리고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을까요? 당신은 주위에서 성령에 충만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의 삶이 어떻게 변하였는지 확인하고 있는지요?

감사는 성령 충만의 결과이자 비결이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때론 억지로 감사하게 되면, 성령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진정한 감사가 나오도록 우리의 마음을 만지신다.



내러티브 성경공부 3(성령학교 현장)



인도자를 위한 가이드

성령학교 현장을 위해 산정호수 인근에 있는 평강식물원을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평강식물원은 다른 식물원과는 달리 고산식물들을 잘 보존하고 있습니다. 사실 고산식물은 산정호수 인근에서 뿌리를 내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원예사들이 토양을 고산식물이 거주할 수 있는 환경으로 만들어 주면 아무리 환경이 척박할지라도, 고산식물들이 튼튼히 뿌리를 내리고 살 수 있는 환경으로 조성됩니다. 이것을 성령학교에 적용하고자 다양한 성령학교 현장 중에 하나인 평강식물원을 방문하는 것입니다.


● 성령 충만과 실천하는 삶

  내 삶을 돌아보게 되면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성령 충만과 사회 실천은 다른 단계의 사건으로 보고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물론, 의견을 말하거나 생각을 정리할 때에는 둘의 관계를 서로 연결하여 말하지만 실제로는 실천하려는 마음이 많이 없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성령이 임하시게 된다면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요? 그 원인을 살펴보도록 합시다.

  첫째로 성령 훈련을 받았던 곳에서 조차 사회 실천에 관련된 언급을 많이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보통 성령 훈련의 초점이 개인의 삶에만 초점이 맞춰 져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바라 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성령의 궁극적인 사역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 근본적인 이유를 살펴보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위함인데, 우리가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면 성령 충만의 목적의 반절만 성립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내 이성이 성령을 제한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성령은 인격적이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이성을 꺾으면서 까지 자신의 일을 이루시지 않으십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지만 많은 부분에서 각 사람의 이성을 존중하시며 그 이성에 맞는 수준으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이성을 열어 놓고 하나님이 하시도록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를 들면, 방언도 우리의 이성으로 방언을 판단하고 과정을 관찰하고만 있다면 방언을 받을 수 없습니다. 방언은 온전히 내 몸과 혀를 맡겨 내 이성을 하나님의 통제 앞에 드릴 때 받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생각을 열어 성령이 일하시기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셋째로, 실천 계획과 실제 적용 훈련의 부재입니다. 많은 성경공부와 세미나는 결단에서 그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구체적인 적용 부분에서는 그냥 나눔 정도로 끝내는 경향이 많습니다. 삶 속에 적용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에서 서로 돕고 서로의 눈이 되어 적용할 수 있는 계기를 불어 넣어 줘야 하지만, 그런 모임에서 적용 동기를 주지 못하게 되면 그 시간의 결심은 소용이 없는 것이 됩니다.


성령현장에서 나누는 성경공부


1) 성령의 도우심을 바라는 삶(행 1:1~5)


사랑으로 사는 길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데오빌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에 행하고 가르치신 모든 일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사랑의 위대한 행동입니다. 여기 ‘해 받으신 후’에 영광의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성령 충만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제 주님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얼굴’로 나타나신 분이십니다. 부활의 주님은 브니엘의 영광 그 자체이십니다(참고 창 32: 30~31; 33:10). 성령의 도우심이 아니면 예루살렘에서 당한 것과 같은 고난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는 동안에 여전히 힘든 일이 성도들에게 닥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든 고난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은 성령의 도우심이었습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으로 새롭게 하십니다. 성령의 기름부음이 임할 때, 고난도 이기고 또 감당할 새로운 사명도 깨닫게 됩니다. 성령을 기다린 사람들은 마침내 위로부터 오는 능력으로 덧입게 됩니다.


2)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들음(행 22:6~16)


예수님께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시고, 예수님 자신도 3년간의 공생애를 통하여 몸소 실천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본문은 십자가의 도를 따라 살아간 아나니아와 바울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구원의 감격 속에 살아간 바울의 삶과 오직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다고 고백하는 바울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십자가의 도를 실천하면서 복음을 위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받은 자들로서, 주의 복음을 전파하는 증인으로 살기로 작정한 하나님의 일군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현 시대는 어떻습니까? 정말 힘들고 어렵지만 아나니아처럼 바울처럼 순종하는 믿음으로 선교의 사명을 잘 감당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바울은 언제나 먼저 자기 동족을 찾아 전도했고, 때로는 이로 인해 수난받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직접 들은 후에 동족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이 하나님 앞에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 끊어질지라도 원하였습니다.


함께 나눌 이야기

        문화의 옷을 입고 침투해 들어오는 이슬람을 대비해서 당신이 준비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나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교리적 차이를 분명히 인식하기 위해 관련서적을 읽고 있다. 나는 이슬람의 문화침투 방식을 알고자 관련 세미나와 학술 자료들을 틈틈이 모으며 공부하고 있다. 또한 나는 더욱 기도로 하나님께 지혜와 보고를 간구하고 있다. 세계 2위의 선교사 파송국, 실제 인구비율로는 1위인 대한민국을 세계 무슬림이 주목하고 2020년까지 한국의 이슬람 화를 목표로 이슬람의 자본이 대거 한국으로 몰려오고 있다.  문화의 옷을 입고 친근한 이웃처럼 몰려오는 이슬람과, 이단의 공격에 대해 분별하고 맞서기 위해 기도와 말씀으로 성령 충만한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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