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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3-05 09:32
유대주의 문헌 개론
 글쓴이 : 신약사랑
조회 : 5,266  
   유대주의 문헌 개론 1.hwp (52.5K) [149] DATE : 2009-03-05 09:35:55
유대주의 문헌 개론 1
1. 유대주의 탄생의 배경 - 출애굽(Exodus) 그리고 바빌론 포로(Babylon Exile)와              제 이 성전(the Second Temple) 파괴:
# 고난에 대한 이해
- 고난에 대한 이해는 유대주의의 철학과 기초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통로이다.
세계 여타 민족과 국가도 그러하지만, 이스라엘은 그 고대 역사와 근세사에 있어서 고난과 대단히 가까운 거리를 유지한 민족이라고 볼 수 있다. 항상 고난과 함께 살았던 그들이니 만큼 ‘고난’(苦難)은 유대주의 사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유대주의 문헌에 있어서의 출애굽의 위치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고난(苦難)의 신학화(神學化)’에 기여한 사건들이 있다면 우선은 역사의 전반부에서 일어났던 출애굽 사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출애굽 연대에 관한 문제 내지는 출애굽이 실제로 존재했는가 여부에 대해 현대의 비평학자들 사이에서 견해가 갈리기는 하지만 출애굽은 성서 속에서나 혹은 그 이후의 유대주의 문헌에서 신학화 단계를 거쳐서 계속해서 언급되는 중요한 사건이다. 특히 유대주의 문헌에서는 출애굽 사건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구원사의 원형으로 이해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성서 본문에 대한 해석의 근거로도 자주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출애굽은 고난의 신학과 관련해서 대단히 중요한 이해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첫째로, 출애굽은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고난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신앙고백적 틀을 형성하여 후대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기초로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출애굽 자체는 과거 속에 누워있는 사건이지만, 여기에 근거한 신앙고백은 현재적 사건일 수 있다. 그러므로 현재와 과거가 서로 그 안에 맞물려있다. 둘째로는, 출애굽 이해는 고난 자체에 대한 해석이라기 보다 고난으로부터의 탈출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따라서 하나님의 구원 행위가 이스라엘이 고난 당한 것을 압도하는 모습을 후대의 신앙고백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 Exile 과 제이성전 파괴
출애굽 사건이 이러한 성격으로 유대주의 문헌에서 나타나고 있다면, ‘고난의 신학’에 있어서 조금은 차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서 또 다른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사건들이 바로 바빌론 포로와 제 이 성전 파괴이다. 전자는 주전 587년에 일어났으며, 후자는 주후 70년에 생긴 사건이므로 두 사건의 시간적인 거리는 대단히 멀어보이지만, 그 신학적 거리는 대단히 근접해있다. 이를테면, 이 두 사건이 의미하는 것이 곧 ‘하나님으로부터의 버림’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유대주의 문헌 속에 드러난 이 두 사건의 해석을 일별해 보면, 출애굽과 비교해서 생각할 때에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로, 출애굽이 유대주의 문헌 생산자들에게 있어서 과거의 사건이었음에 비교해서 이 두 사건은 현재적으로 경험하고 있는 연속적인 사건들이었다. 출애굽은 신앙고백이라는 모습으로 현재에 살아있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 두 사건은 현재적 실체(reality)로서 그들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따라서 이 사건들의 해석은 과거와 묶여 있었다기 보다는 미래로 열려져 있었다. 말하자면, 이제부터 이 사건을 해석해 나가는 관점에 따라서 유대인 공동체의 앞길이 결정되는 셈이었다. 그러므로 이 사건들 안에는 현재와 미래가 한데 맞물려있다. 둘째로, 출애굽이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면, 이 두 사건을 통해서 유대인들은 고난의 의미를 먼저 생각해야 했다. 현재적 시점에서 고난은 진행중이다. 그리고 해결은 요원한 상태에 있었다. 따라서 이 사건들을 바라보는 유대인들은 먼저 고난의 이유를 생각하고 그리고 그 해결책을 모색해야만 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어떤 형태로든 해결이 되어야만 유대인 공동체는 나름대로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야웨 신앙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가능했던 만큼, 고난에 대한 이해는 그들에게 절박한 과제일 수밖에 없었다.
# 고난의 결과 = 후기 유대주의 (the late Judaism / Rabbinic Juadaism)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보자면, 출애굽과 바빌론 포로 그리고 제 이 성전 파괴는 유대인들의 고난과 삶 속에서 나름대로의 정체성(identity) 형성에 커다란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유대인들은 그들이 ‘선민’(選民)임을 확인했다. 그러나, 바빌론 포로와 제 이 성전 파괴에 의해서 그들의 ‘선민의식’은 정체성(identity)을 잃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선민이 버림받은 이유에 대해서 설득력있는 해석을 스스로에게 요구했으며, 이러한 요구는 당연히 그 이전과는 다른 신앙적 자세를 그들로 하여금 소유하게 했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새로운 신앙적 자세에서 소위 오늘날 우리가 유대주의 문헌이라고 부르는 문학들이 생산되었다. 그리고 유대주의 문헌의 생성에는 이러한 내적인 이유 외에도 그것이 원인이 된 외적인 요인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 공동체로부터의 도전이었다. 왜냐하면 기독교인들은 제 이 성전 파괴를 유대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리받은 결정적 증거로 이해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유대인들은 이 사건이 하나님과의 관계의 끝이라기 보다는 그들의 ‘죄와 잘못을 수정할 수 있는 계기’(corrective moment)로 이해해서 하나님과의 관계 유지의 또 다른 기원으로 삼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기독교인들에게 아전인수(我田引水)적인 것으로 비추어졌기 때문에 이로 인해서 소위 verus Israel 논쟁이 벌어지게 되었다. 결국 이와같은 기독교의 공세적 해석에 대한 변증의 차원에서 이 사건은 유대주의 문헌 생성의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이후 기독교와 유대교간에 벌어졌던 이 첨예한 논쟁은 부정적인 면도 있었지만, 기실 긍정적으로도 작용하여 서로에게 신학의 발전이라는 선물을 안겨주기도 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에, 바빌론 포로 사건이 ‘후기 유대주의’(the Late Judaism) 혹은 ‘랍비 유대주의’(the Rabbinic Judaism) 내지는 ‘탈무드 유대주의’(the Talmudic Judaism) 라고 불리우는 시기가 배태(胚胎)된 때라면, 주후 70년에 일어났던 제 이 성전 파괴는 결정적으로 이 시기의 탄생을 결정지은 계기의 때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팔레스틴 유대 공동체는 주후 70년 이후로 정치적인 독립성을 상실했으며, 아울러 성전과 이를 관장하던 제사장 세력의 힘도 사라졌다. 따라서 새로운 질서의 형성이 팔레스틴의 유대 공동체에 요구되었으며, 소위 '얌니아'(Jamnia)라고도 이름하는 '야브네'(Yabneh)를 중심으로 서서히 새로운 자치 질서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요하난 벤 자카이(Yohanan ben Zakai)가 중심이 되었으며, 그는 우선 바리새 전통을 지닌 학자들과 서기관 계통의 학자들을 모아서 공동체의 중심축을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시작된 팔레스틴의 유대주의는 결국 팔레스틴 탈무드(Yerusalmi)와 미드라쉬(Midrash)를 그 열매로 남겼다. 한편, 제 이 성전 파괴를 계기로 해서 많은 유대학자들이 바빌론(Babylon)으로 거주지를 옮겼으며, 이들의 이주는 주후 135년경에 일어난 바르 코흐바 혁명(Bar Kochba Revolt) 이후에 정점에 달했다. 이 결과로 팔레스틴에서 이주한 랍비들에 의해 바빌론 유대 공동체는 이후 유대주의 역사에 있어서 팔레스틴을 능가하는 중심적 위치에 서게 되었고, 결국 오늘날 유대 문학의 최고봉으로 손꼽히는 바빌론 탈무드(Bavli)를 생산해내게 되었다.
2. 대표적인 유대주의 문헌들 - 미쉬나(Mishna)와 탈무드(Talmud) 그리고 미드라쉬(Midrash)
앞서 언급했듯이 유대주의(Judaism)는 고난의 토양에서 이것을 재해석하여 여전히 하나님의 선민으로 살아남으려 했던 유대인들의 노력의 결과이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는 바로 그들이 생산한 문헌 속에서 결실을 맺고 있다.
1) 미쉬나와 탈무드
유대주의 문헌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은 미쉬나이다. 구전과 편집의 단계를 거쳐서 현존하는 미쉬나의 형태가 완성된 것은 대략 주후 200년 경으로 알려져있다. 미쉬나의 내용과 형태를 가장 먼저 편집한 사람은 랍비 아키바(R. Aqiba)로 알려져 있으며, 그후에 랍비 메이어(R. Meir)를 거쳐서 마침내 최종적으로 편집을 책임 진 사람은 랍비 유다 하 나시(R. Judah Ha-Nasi)이다. 미쉬나의 내용은 크게 보아서 세가지 유대주의 전승과 맞닿아 있다: (1) 성경 본문의 해석이랄 수 있는 초기 미드라쉬; (2) 성서의 규범을 다루고 있는 할라카(Hallakha); (3) 할라카를 제외한 모든 자료를 일컫는 하가다(Haggada). 이러한 전승의 수집과정 속에서 형성된 미쉬나는 전부 여섯 개의 커다란 항목으로 나뉘어 있으며, 이 여섯 개의 항목은 다시 예순 세 개의 작은 부분으로 세분되어있다. 미쉬나를 생산한 랍비들의 그룹이 ‘타나임’(Tannaim)이라면, 미쉬나를 다시 해석한 ‘그마라’(Gemarah)를 생산하여 결국은 ‘탈무드’(Talmud)를 만들어낸 그룹은 ‘아모라임’(Amoraim)이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언급한 것처럼 유대주의 문헌이 집대성 된 작품을 탈무드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문서를 통해서 랍비 유대주의 공동체는 성경을 어떻게 해석하고 당시 그들의 삶의 정황을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 미드라쉬(Midrash)
1) 미드라쉬(Midrash)의 형성과정과 종류:
미쉬나와 탈무드 못지 않게 중요한 유대주의 문헌 가운데 하나가 바로 미드라쉬(Midrash)이다. 이를테면 미드라쉬는 나름대로의 원칙을 가지고 성서의 본문을 해석하려고 시도한 랍비들의 노력의 결정물이라고 할 수 있는 문헌이다. 오늘날의 용어로 하면 주석(commentary) 혹은 해석(exegesis)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성격을 가진 문학작품이다. 미드라쉬의 형성과정과 그 종류, 해석원칙, 그리고 수사법등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하자.
# 말 뜻
‘미드라쉬’라는 용어는 히브리어 darash(찾다, 구하다)에서 비롯되었다. 에스라 7장 10절에 “에스라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여 준행하며 율례와 규례를 이스라엘에게 가르치기로 결심하였었더라”는 말씀에서 darash가 이와같은 용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명사형인 midrash 역시 두차례에 걸쳐서 사용되고 있긴 하지만(대하13:22 “선지자 잇도의 주석 책”; 대하24:27 “열왕기 주석”), 실제로 그 의미가 개역성경에 번역된 것처럼 ‘주석’(interpretive writing)인지 아니면 단순히 ’책‘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보다 더 후대의 의미인 ’조사하다‘ 혹은 ’공부(연구)하다‘라는 뜻이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Ben Sira 51:23에 나타난 ’beth midrash'(공부의 집, 학교)라는 표현에서이다. 특히 쿰란(Qumran)문서에서는 랍비문헌의 용례와 같이 ‘공부(연구)하다, 해석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어서 이 용어의 시대에 따른 의미 변천을 짐작할 수 있게 해준다. 언급한대로 랍비문헌에서는 미드라쉬가 ‘연구, 조사’등의 의미로 사용되며, 이 보다 좁은 전문적인 의미인 ‘주석, 해석’의 용례 또한 발견된다.
# 형성과정
미드라쉬가 언제부터 어떤 경로를 거쳐서 형성되었는가를 명확하게 집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제이콥 뉴스너(Jacob Neusner)에 의하면 미드라쉬는 세가지 모습을 그 이름 값으로 가지고 있다: (1) 어떤 특정한 성서본문에 대한 해석의 과정(process of interpretation), 혹은 해석원칙(hermeneutic); (2) 그 과정의 결과로 생산된 주석 책; (3) 각 단락(절, 혹은 구절 내지는 장)으로 나누어지는 주석의 각 부분. 이러한 뉴스너의 견해는 사실, 지금까지 미드라쉬를 연구해 온 학자들의 주장을 정리해서 대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만일, 뉴스너의 견해를 무리없이 받아들 일 수 있다면, 젤리그만(Seeligmann)이 언급한 것처럼 우리는 미드라쉬의 초기 형태를 성경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 예를 역대기(Chronicles)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역대기를 사무엘서와 열왕기서의 해석으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구약 중간기(intertestamental period)의 문헌으로서는 성경의 기사를 해석적으로 재구성한 the book of Jubilees나 혹은 Genesis Apocryphon 정도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또한 성경 기사의 해석적인 번역을 미드라쉬의 초기 형태로 이해한다면, 탈굼(Targum) 역시 여기서 제외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탈굼은 단순한 번역이라기 보다, 설명과 해석을 집어넣어 성경기사의 확장을 시도한 번역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탈굼의 요소가운데 많은 부분이 미드라쉬의 형성 과정 속에 유입되었을 것이란 가정에 의문을 표시하지 않는다. 피쉬베인(M. Fishbane)은 이보다 한발 더 나간 초기 미드라쉬의 형태를 쿰란(Qumran)에서 발견된 주석인 '페쉐르'(Pesher)에서 찾는다. 페쉐르는 그 형태에 있어서 각 성경구절마다 그에 상응하는 해석을 붙여놓은 모습을 갖고 있어서 가히 미드라쉬의 sub-genre라고 불리울만한 자격을 갖추었다고 보여진다. 이와 같은 형태의 발전을 거쳐서 랍비들이 생산한 현존하는 미드라쉬의 모습과 가장 가까운 형태의 문헌을 들자면, Liber Antiquitatum Biblicarum을 언급할 수 있는데, 포튼(Porton)은 이 문헌을 가장 현존하는 미드라쉬에 근접한 형태를 갖춘 주석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같은 발전단계를 거친 미드라쉬는 유대주의의 문헌가운데서 팔레스틴 랍비들의 노력에 의해서 성경본문을 다룬 해석책이라는 특별한 위치를 점유하게 되었다. 물론 미드라쉬를 가장 먼저 시작한 상징적인 인물로는 에스라와 그 이후의 서기관 계급을 들 수 있지만, 실제로 이같은 학문적 노력이 시작된 시기는 타나임 랍비와 아모라임 랍비들의 시기라고 말 할 수 있다.
# 미드라쉬의 분류
미드라쉬는 내용과 형태에 따라 다르게 구분한다. 먼저 내용에 따라서 미드라쉬를 분류하자면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Halakhic midrash; (2) Haggadic midrash. 실제에 있어서는 halakhic 미드라쉬가 haggadic 자료를 그 안에 포함할 수 있으므로 이같은 구별이 가능하지 않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주어진 미드라쉬가 관심하는 주된 내용에 따라서 이같이 구분하는 것에 큰 무리는 없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halakic 미드라쉬는 규범과 법에 관한 토론과 해석을 담은 것이며, haggadic 미드라쉬는 성경에 있어서 그 외의 자료들, 이를테면 신앙의 표준, 신앙인의 자세, 도덕적 교훈 등을 다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성경에 나와있는 ‘이야기’(narrative) 부분에 대한 해석도 여기에 속한다.
형태에 따라서 미드라쉬를 구분하자면, 크게 보아 세가지 모습으로 분류할 수 있다: (1) 석의형(Exegetical) 미드라쉬; (2) 설교형(Homiletical) 미드라쉬; (3) 혼합형(fusion of Exegetical and Homiletical) 미드라쉬. 석의형 미드라쉬는 성경 본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미쉬나와의 관계성을 토대로 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레위기의 주석인 ‘시프라’(Sifra)와 민수기와 신명기의 주석인 ‘시프레’(Sifre), 그리고 창세기 주석인 브레쉬트 라바‘(Breshit Rabbah)가 석의형 미드라쉬의 전형인데, 이들은 대부분 규범을 중심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해석의 방향에 있어서 미쉬나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석의형 미드라쉬의 전형적인 형태는 각 단어 별로(word by word) 그리고 각 구절 별로(phrase by phrase) 해석을 해 나가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한편 설교형 미드라쉬는 시나고그(Synagogue)에서 행해졌던 설교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매 안식일마다 정해진 분량만큼 읽는 오경과 예언서 부분의 일과서(lectionary)를 주제별로 강해한 것을 문서화한 것이다. 이 형태는 석의형 미드라쉬에 비해서 보다 더 추론적(discursive)이며 철학적인(philosophical) 본문 이해를 보인다. ‘레위기 라바’(Leviticus Rabbah - Sifra와 구별된다)와 ‘페식타 드 라브 카하나’(Pesikta de-Rabbi Kahana)가 대표적인 이 계통의 작품이다. 세 번째 형태인 혼합형은 석의형 스타일과 설교형 스타일을 절충해서 혼합한 형태이다. 룻 라바(Ruth Rabbah), 에스더 라바(Esther Rabbah) 그리고 아가서 라바(the Song of Songs Rabbah)가 여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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